로자 파크스: 인종차별 극복 투쟁과 미국의 용감한 영웅

2024. 1. 16. 20:23역사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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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색인의 버스 자리를 지킨 최초의 흑인, 로자 파크스(1)

1955년 미국에서는 흑인과 백인이 같은 버스안에서도 좌석이 구분되어있었고 흑인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하는,지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법으로 정해져 있던 인종차별의 시기였습니다. 그 해 겨울 12월 1일 흑인 여성 로자 루이즈 매콜리 파크스는 일을 마치고 버스를 탔고,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버스 안에서 백인  자리를 내어주라는 버스 운전사의 지시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 사건은 382일에 걸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으로 이어진 역사적인 사건이였습니다. 

로자파크스의버스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했던 흑인들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955년 12월 1일, 로자 파크스는 몽고메리 페어 백화점 일을 마치고 오후 6시쯤에 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요금을 낸 뒤 버스 뒷부분에 위치한 유색칸으로 지정된 좌석 중 첫 번째 줄의 빈 자리에 앉았습니다. 버스는 정류장을 지나며 백인 전용칸에 있는 좌석들이 채워졌고, 엠파이어 극장 앞 세 번째 정거장에서 몇 명의 백인들이 승차했고 앉을 자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버스 운전사인 제임스 F.  흑인 전용칸에 앉아있던 로자 파크스를 포함한 네 명의 흑인들에게 백인에게 앉을 자리를 내주라고 했습니다. 다른 세 명의 흑인은 일어났지만 로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운전사가 왜 일어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로자 파크스는 "내가 일어나야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블레이크 운전사는 경찰을 불러 로자 파크스를 체포하도록 했습니다. 로자는 몽고메리 시 조례 6장 11절의 분리법을 어긴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앉았을 때 해당 칸은 유색칸이었기 때문에 혐의가 사라져 저녁에는 풀려났습니다. 이 법은 1900년에 제정된 것입니다.

로자파크스의 버스

로자 파크스: 인종 차별에 맞설 용기와 인권운동의 초석

이 사건은 인종 차별과 흑인 분리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확대되었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참여하게 되면서 흑인의 인권과 권리와 이익을 증진하는 미국 인권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현대 인권 운동의 어머니"로 미국 의회에 의해 명명되었습니다.

미국 남부에서는 그 당시 짐 크로우법이라 불리는 인종차별법이 유효했습니다. 이 법은 흑인과 백인 사이에 분리를 강요했고, 대중 교통 수단인 버스나 기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겉으로는 같이 타지만, 앉는 자리는 백인과 흑인을 나누어 앉게 했습니다. 더구나 흑인 어린이들에겐 학교버스가 제공되지 않아 걸어다녀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들은 매일 백인들의 차별을 경험했습니다.

인종차별

로자 파크스: 인권 운동의 불꽃

로자 파크스는 자신의 회고에서 말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 버스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선택이 아닌  흑인들은 버스를 탈수 없다는 현실이었죠. 그것은  세상이 흑백으로 나뉜 것을 깨닫게 해준 계기였습니다.

로자 파크스는 KKK와 지역 백인들의 위협으로 백화점에서의 일자리를 잃고 남편 또한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북부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로 이사했습니다. 그곳에서는 흑인차별 반대와 인권운동을 했습니다.

로자 파크스는  그후 그녀을 원하는 곳곳에서 흑인차별 반대와 인권의 중요성을 알리는 연설을 했고, 그런 활동을 계속하면서도 재봉사로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1965년, 아프리카계 미국 하원의원 존 콘이어가 그녀의 철학과 태도를 눈여겨 보고 디트로이트 사무실의 의원실에서 일하였습니다. 

인종차별에 항거한 로자 파크스

 

로자 파크스의 마지막 순간과 영원한 회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6년 로자 파크스에게 민간인에게 수여되는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2005년 10월 24일,

92세의 나이로 디트로이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자 파크스의 유해는 워싱턴DC 국회의사당인 캐피톨 힐에 안장되었는데, 이는 여성으로서는 첫 번째이자 흑인으로서는 두 번째입니다.

장례식에는 콘돌리사 라이스 장관이 참석했는데, 그녀는 로자 파크스가 없었다면 국무장관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회의사당 중앙 홀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4만 명 이상의 시민 조문객이 참석하여 애도를 표했습니다. 파크스가 오랫동안 살았던 디트로이트에서 장례식이 열렸을 때, 미국의 모든 공공 기관이 조기를 울려 추모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로자 파크스에 관한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책을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보실 분은 로자 파크스의 버스 도서 미리보기 눌러주세요. 

로자 파크스의 버스 그림책 미리보기

흑인 인권을 재고하며: 플로이드 사건으로 드러난 우리의 과제

로자 파크스의 용기와 희생이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끈 초석이었지만, 아직도 인종차별은 존재합니다. 특히,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흑인 인권 운동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플로이드의 사건으로 미국 사회는 다시 한 번 어두운 측면을 직시했습니다.백인 경찰이 플로이드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목을 죄였고 숨이 안쉬어진다고 말했지만 8분 46초 동안 놓아주지 않고 계속 목을 조여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이 사건을 처리하고 공개된 과정에서의 문제도 큰 논란이었습니다. 병원으로 옮겨진 후 그의 사망은 의료사고로 발표되었지만 이후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국가적인 분노가 일었습니다.

흑인 인권을 위한 'Black Lives Matter (BLM)'라는 구호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분노와 항의의 목소리로 번지며, 수많은 도시에서 크고 작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열렸습니다. 이 시위에는 경찰 뿐만 아니라 미국 전 두목과 캐나다 총리 등의 지도자들도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흑인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과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플로이드가 경찰에 의해 사망한 후 발생한 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분노를 촉발시켰고,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와 항의가 급속하게 퍼져갔습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로자 파크스와 같은 역사적 인물의 희생이 지금도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문제임을 상기시키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의 인권 운동을 이어가는 동기를 부여합니다.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녀와 같은 용기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이제 우리는 현재의 문제에 직면하며 과거의 희생과 투쟁의 유산을 토대로 인종차별을 극복하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미국 인권운동가 로자파크스
미국 인권 운동가 로자 파크스

(1)로자 루이즈 매콜리 파크스( Rosa Louise McCauley Parks)
: 1913년 2월 4일 ~ 2005년 10월 24일 미국의 민권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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